2015년 2월 어느 날. 시계는 벌써 밤 10시를 가리켰다. 청년은 그제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몸에 와 닿는 겨울바람은 날카로운 칼 같았다. 늦은 퇴근이라 몸은 이미 녹초였다. 추위와 피곤함이 겹쳐 출출함이 느껴졌다. 왜 하필 그 순간 피자가 떠올랐을까. 아마도 운명이었을 거다. 1주일에 4번 씩 맥도날드를 찾던 그다. 그런 그가 그날만은 피자가 ‘고팠다’. 그 ‘고픔’이 훗날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을지는 그땐 몰랐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혼자 먹기에 피자는 적합한 음식이 아니었다. 간단한 끼니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지갑에서 최소 2만원은 꺼내야 했다. 주문도 30분 전 쯤에는 미리 완료해야 했다. ‘그냥 햄버거나 먹자’. 청년은 그날도 집 앞 맥도날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맥도날드는 분주했다. 주문을 위해 긴 줄을 기다렸다. 청년은 문득 궁금했다. 왜 피자는 맥도날드처럼 간단해질 수 없을까. 의문은 기획을 소환했다. 바로 다음 날 이 아이디어를 파워포인트(PPT)로 제작했다. 함께 할 팀원들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구글로 피자를 배웠다. 바닥부터 익히기 위해 유명 프랜차이즈에서 두 달 간 아르바이트로도 일했다. 그렇게 청년은 겁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밤 도깨비 야시장’을 휩쓸고 백화점에까지 입점한 GOPIZZA(이하 고피자) 탄생기다.
청년 이름은 임재원. 1989년생이니 이제 한국나이로 29세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KAIST)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동안 마케터로 살았다. 광고회사에서도, 자동차회사에서도,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서도 그는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 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현실화할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다 벼락처럼 그에게 ‘피자’라는 꿈이 쏟아졌다. 어느덧 그는 1년에 40만판 이상의 피자를 판매하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다. 그 사이 동갑내기 오랜 연인과 결혼도 했다. 임 대표를 29일 오후 서울 대치동 고피자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하필 푸드트럭이었나?
사실 푸드트럭이 뭔지도 몰랐다. 그때까진 직장인이었으니 나와는 다른 세계였다. 처음에는 억대단위 규모 투자를 받으러 돌아다녔다. 그런데 파워포인트(PPT) 안에만 존재하는 사업에 투자할 사람은 없지 않나. 소자본으로 가능하면서도 소비자에게 먹힐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 와중에 푸드트럭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조기축구회 앞에라도 가서 행사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마침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이라는 게 생겨났다. (창업 직전에 IT스타트업에서 일한 덕에) 지원서 쓰는 건 익숙했다. (그래서) 한 번에 합격했다. 이후 푸드트럭에 관한 여러 정책들도 생겨났다. 잘 맞아떨어졌다.
마케팅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마케터로서 일해 온 게 푸드트럭에도 도움이 됐나?
푸드트럭을 하면 소비자가 정말 눈앞에 있다. 전쟁터다. 카이스트 석사건 하버드 박사건 상관없다. 옆에서 음식 파는 아주머니가 진짜 경쟁자다. 그런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 회사를 전반적으로 운영하는 업무도 경험했다. 시장을 멀리서 볼 수 있는 공부도 해봤다. 짧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운이 좋았다.
3분 완성 1인피자가 핵심 컨셉(concept)이다. 다른 피자전문점과 차별화 지점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1시간에 수백 개의 피자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고민 끝에) 카이스트생 3명이서 트럭을 직접 설계해서 (제조사에) 가져갔다. 트럭을 통해 3분 안에 피자를 낼 수 있는 비결은 두 가지의 결합 덕이다. 기존에 쓰던 피자도우나 조리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사용하고 있는 집기나 주방 오퍼레이션도 기존 피자점과 다르다.
임 대표는 너무 자세한 기술 노하우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양해를 구하며 답변을 이어갔다.
화덕을 쓰는 첫 번째 프랜차이즈가 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는 화덕 오븐이 이태원 등지에 있는 고급 피자점이나 동네 화덕 피자점에서 주로 쓰였다. 규모가 큰 화덕이다. 장점은 피자가 맛있고 빠르게 구워진다는 데 있다. 단점은 손이 많이 가고 전문가의 기술을 요한다는 거다. 품질조절이 쉽지 않다. 한 번에 조리할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다. 우리는 화덕을 소형화, 자동화할 계획이다. 피자가 빠르고 맛있게 구워지되 원래 화덕이 가진 단점도 상쇄하려 한다. 이게 ‘고피자 오븐’이다. 현재 80~90% 이상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4월 중순에서 말 쯤 시제품이 나오고 6월 중에 상품화 단계를 거칠 거다.
하필 27일부터 맘스터치를 운영하는 해마로푸드서비스가 가성비 좋은 화덕피자를 표방한 붐바타를 론칭했다. 어떻게 보면 갑자기 강력한 경쟁상대가 떠오른 건데, 차별화 지점은 뭘까? 붐바타도 화덕을 프랜차이즈화하여 곧 대대적인 가맹 모집에 나설텐데?
사실 피자헛도 ‘빠른 1인 피자’를 만드는 브랜드를 새로 출시했다. 재작년부터 누군가 이 사업을 반드시 시작하리라 봤었다. 그래서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존 브랜드가 가져가는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이다. 현재 1인피자 시장에서 선두플레이어는 없다. 큰 브랜드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고무적인 일이다.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큰 플레이어가 들어와서 싹쓸이를 하면 힘들텐데, 큰 브랜드들도 처음부터 시작하는 단계다. 긍정적인 일이다. 각자 잘하는 걸로 시장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다.
창업자 3인의 이력이 ‘피자가게 사장님’으로서는 색다르다. 마케팅, 경영, 금융공학 등을 했다. 얼핏 보면 당장 외식사업과 연결되지 않는데, 순탄치 않은 외식사업가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뭔가?
처음 함께 창업했던 친구는 학교와 회사 동기다. 3개월 간 같이 해보자고 꼬셨다. 그 친구가 굉장히 머리가 좋다. 머리만 빌려달라고 했다.(웃음) 퇴근 후 함께 재밌게 일을 했다. 그 후 새 투자자가 들어와서 동업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셋 다 1989년생이다.
트럭에 애착이 큰 것 같다. 프랜차이즈로 가도 트럭은 계속 유지하는 건가?
트럭은 엄청난 캐시카우(cash cow)다. 고정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데도 행사에 가서 짧게만 운영하면 거의 매장에 가까운 수익이 난다. 나중에 사업이 커져도 홍보수단으로도 유지할 계획이다. 한 번에 10만~20만명 고객을 만나는 아주 좋은 창구다. 트럭이라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고피자는 성공모델이지만 사실 푸드트럭은 최근 입길에 올랐다. 전국에 등록한 푸드트럭 중 22%만 영업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기존 상인의 반발 때문에 핵심상권보다는 한정된 지역에서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어 폐업이 속출한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기존 상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발이다. 어떻게 보나?
멋있는 트럭이 많아졌다.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많다. 어느 사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잘되니까 나도 해봐야지’ 해서 뛰어들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공하면 캐시카우지만 실패하면 행사 자체도 못 들어간다. 장사할 곳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놀아야 한다. 비가 오거나 국가적인 중대사가 생겨도 행사가 취소될 수도 있다. 경쟁이 치열하고 갈 수 있는 행사와 대형 이벤트도 한정적이다. 시작을 할 때는 분명 장‧단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요새는 트럭을 만드는 데도 투자금을 엄청나게 쓰더라. 매장 하나 꾸미는 만큼 쓰는 사례도 있다. 그런 부분도 조심해야 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법칙은 불변이다.
이탈리아 국립피자학교 피자전문 교육과정도 이수했나?
이탈리아에 간 건 아니다.(웃음)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가맹 형태로 준 라이선스를 갖춘 교육기관이다. 이수를 하면 이탈리아에서 학위가 온다. 처음에는 구글로 피자를 배웠다. 구글에는 엄청난 셰프의 기술들이 다 있더라. 어머니가 인사동에서 한식당을 하신다. 식당 영업이 끝나면 내 오븐을 들고 갔다. 그곳에서 맥주컵에 계량해가면서 스스로 피자를 배웠다.(웃음)
대형 프랜차이즈 피자전문점에서도 두 달 간 아르바이트로 일했다. 평일에는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가서 아르바이트 했다. 피자 사업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바닥부터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아홉 살짜리 친구한테 엄청 혼나가면서 배웠다. 돈도 없었고 선뜻 피자교육 받는 것도 위험부담이 있다고 여겼었다. 그 후 음식을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자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도우 만드는 과정이 가장 궁금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외식은 젊은 엘리트 창업자들이 도전하기에 너무 레드오션이 아닌가? 또 대기업들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큰 사업자들이 경쟁자로 등장할 수 있다. 위험부담이 있지 않나?
창업 전에는 대기업이나 대기업을 위해 일하는 대행사에서 직장생활을 해왔다. 그때는 고객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아이디어를 통해 무언가를 내놓아서 성공하면 상이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고객에게 팔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걸까, 아니면 브랜드가 대단해서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걸까 이런 회의감이 들었다. IT 스타트업을 보면서는 ‘과연 저게 진짜 되는 사업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IT 스타트업은 불확실성의 비즈니스다. 굉장히 먼 미래를 보고 지속적으로 투자한다.
난 실제 상품을 가지고 첫날부터 매출을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새 유행하는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 외식사업은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장벽도 낮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도리어 좋은 전략과 오퍼레이션을 통해 금방 눈에 띌 수 있는 분야다. 굉장한 천재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나 한국 IT업계에서는 눈에 크게 띄기가 힘들다. 다들 똑똑하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외식사업은 어떻게 보면 매일매일 우후죽순 브랜드가 생겨나는 시장이다.
잘 준비해서 파고들면 다른 영역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역발상했다. 물론 앞으로는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올 거다. 그래서 더 준비하고 올해나 내년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서 매장을 많이 늘릴 계획이다. 대기업과 부딪쳐볼 수 있는 성장을 이루는 게 (단기적인) 목표다.
기존 피자시장이 흡수하지 못했던 고객군을 창출해 전체 크기를 키워낸다고 했다. 학생과 1인식사를 원하는 소비자, 바쁜 직장인들을 사례로 얘기했다. 흥미로운 목표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기성 피자업체가 아닌 1인가구를 겨냥한 더 많은 외식브랜드와 경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인 보쌈의 경쟁자가 같은 보쌈가게가 아니라 편의점이나 분식집 등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맞다. 경쟁상대가 피자헛,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가 아니라 맥도날드나 서브웨이가 되는 거다. 굉장히 많은 브랜드, 식품군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경쟁구도는 바꿀 수 없다. 시장을 바꿀만한 대단한 상품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다. 맛이나 가성비, 브랜드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브랜드여도 마찬가지다. 맘스터치 역시 가성비 좋은 상품을 굉장히 많은 매장에서 내고 있기 때문에 포화로 평가받던 시장에서도 성공하지 않았나. 결국은 상품이다. 좋은 가격에 소비자에게 전달할 방법 밖에 없다.
데이터 기반 수요예측은 마치 아마존의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포함해 오퍼레이션 최적화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주문 후 도우를 피고 토핑을 하고 오븐에 넣으면 절대 3분 안에 피자에 나올 수 없다. 결국 고객이 오기 직전에 어떤 피자를 주문할지 대략 예측을 해서 선조리를 해놓아야 한다. 그런데 또 너무 오랫동안 토핑이 되어있는 상태로 놔두면 퀄리티가 떨어진다. (그래서) 시간대별로 고객이 몇 명 정도가 와서 어떤 피자를 주문할지에 대해 대략적인 예측이 필요하다. 트럭도 많이 다니고 백화점도 입점하면서 단기간에 굉장히 많은 판매 데이터를 축적했다. 누적 50~60만판 정도다.
향후 가맹점 사업을 시작하고 나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가맹점주는 재고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주방 크기가 작아져야 한다. 매장도 최소화하고 이에 맞춰 주방크기도 최소화해야 한다. 대신 홀 사이즈를 키우는 방식으로 회전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본사에서는 어느 가맹점주가 어떤 피자를 몇 개 팔고 있는 지까지 즉각 확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본사가 가맹점 관리하는 데도 훨씬 수월해진다. 점주 입장에서도 고정비 투자가 줄어든다. 현재도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청년사업가의 길을 가고 있다.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와이프는 처음 사업을 구상했을 때부터 옆에서 지원하고 응원해줬다. 반대는커녕 도리어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푸드트럭으로 일할 때 계산업무를 했다.(웃음) 부모님 뿐 아니라 장인장모님도 굉장한 지원을 해주신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내가 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며 응원해주셨다.(웃음)
사업가로서의 꿈이 무엇인가?
직장 다닐 때 (당시 직장동료이던) 공동 창업자 친구와 그런 얘기를 했다. “회사 다니기 싫고 매일 회사 가는 게 힘들지 않냐. 우리가 회사를 만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욕하면서 출근하지 않게는 만들자.” 착한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직급이 아니라 노력으로 보상받는 회사를 만들자고 했다. 그런 회사에서 한 번 일해본 적이 있다. 그게 얼마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동기를 주고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는지 경험했다.
아직 회사가 작고 변화가 많다. 현재까지는 생각만큼 아름다운 회사를 만들지는 못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너무 고생하고 있어서 미안하고 고맙다. 회사를 빨리 안정화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처음 꾸었던 꿈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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